6.25 전쟁이 발발하자 트루만은 즉시 미공군을 투입하면서 맥아더에게 지상군투입을 지시하였고
맥아더는 일본 규슈에 주둔하고있던 24사단에게 한국으로 이동할것을 명령한다
7월 1일 미8군 24사단의 선발대인 스미스특임대대가 규수에서 곧장 부산 수영비행장으로 공수되어
오산으로 출발하였고 뒤이어 딘소장이 이끄는 24사단 본대도 한국으로 출발하게된다
7월 5일 스미스특임대대를 이끄는 스미스중령은 대전으로 가는 도로가 내려다보이는 죽미령에
방어진지를 구축하였고 후방 2km정도 떨어진곳에는 페리중령이 지휘하는 포병대대가 진지를 구축하고
영점타격시험 포격을하며 북한군을 기다리게 된다
스미스대대는 북한탱크를 상대하기위해 75mm무반동대전차포와 바주카포로 무장하였다
당시 미군은 75m무반동대전포의 유효사거리는 700m로 알고있었다
후방 2km 정도 떨어진 곳에서는 페리 중령이 지휘하는 포병대가 스미스부대를 지원하기위한 준비를 마치고있었다
오전 8시경 8대의 북한군 탱크가 모습을 나타내자 전방의 관측장교는 포병진지에 포격을 요청하였고 북한군 탱크를 향해 포격이 시작된다 그러나 포격은 정확하지 않았고 포격에도 아랑곳하지않고 북한군탱크들이 그대로 질주하자 미군방어진에서는 당황하기 시작했고 북한군 탱크들이 충분한 유효사거리안에 들어오기도 전에 바주카포와 75mm무반동로켓을 발사하기 시작한다
북한군탱크들은 이를 무시하고 후방의 포병대를 향해 질주하면서 도중에 도로가에있던 수송차량들을 파괴하고 유선통신선을 잘라버리고 포병진지로 돌진하여 포병부대를 쓸어버린다 (이로인해 미군은 차량으로 후퇴를 하지못하고 중장비와 포탄을 버리고 산으로 도망)
불과 30여분만의 전투로 미군20여명이 전사하고 북한군전차가 진지를 돌파하자 미군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고 퇴로가 차단되어 공황에 빠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10시경 후방의 포병대와 연락이 끓기고 날씨탓에 항공지원마저 받지 못한 상태에서 북한군 본진이 탱크를 앞세우고 전진하면서 보병들이 양측면으로 산개해 압박해오자 스미스중령은 철수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B,C중대가 교대로 철수를 엄호하도록하였는데 공포에 휩싸여 저마다 진지를 이탈하여 무질서하게 산으로 도망함으로서 북한군의 기관총사격으로 큰 피해가 발생하였다
스미스부대는 150명의 전사자와 행방불명자가 발생하는 피해를 입었고 북한군의 집중포화로 부상자 30여명을 그대로 두고왔으며 특히 마지막에 철수한 B중대는 13명만이 살아서 천안으로 돌아왔다 포병은 모든 화포를 잃었고 31명의 병력이 행방불명이 되었다
미군이 집계한 북한군 피해는 전사 42명으로 이를 그대로 받아들인다해도 교환비는 북한군대 미군이 약 1대 5이다
단 몇시간만에 미군이 박살나버린 이유가 무엇일까
미군 보병들은 돌진하는 탱크에 겁을먹고 충분히 다가오지 않은 먼거리에서 대전차로켓을 발사했고 탱크가 파괴되지않고 돌진하자 패닉에 빠져 저마다 무기를 버리고 무질서하게 진지를 이탈해버린것이다
북한군탱크의 선발대가 미군의 방어진을 그대로 돌파하여 후방을 차단하고 포병부대를 쓸어버렸기때문에 미군은 포병의 지원을 받지 못한데다 후방이 차단되었다는 공포감에 제대로 총한번 쏘지도못하고 궤멸되어버린것이다
북한측 자료에의한다면 아마 미군의 피해는 훨씬 더 컸을겁니다
준비없이 급하게 투입된 탓에 피해가 매우 컷죠
일본군에 얼마 버티지 못 하고 항복을 했던 1급 전투병이라기 보다는 2급의 주둔군 느낌의 영연방군이 일본군의 작은 탱크에 유린된 것처럼,
게다가 유럽에서 독일군과의 전투경험과는 전혀 다른 소련군 교리를 받은 북한군 탱크작전에 그야말로 유린당하고 안타깝게도 딘소장도 포로로 잡혀버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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