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제 14호 태풍 'MAEMI'. 이미 오키나와 남부에서 부터 910HPA 최대풍속100노트로 불어오던 매미는 지난해 8월 말 사라와 비교해서 강했으면 강했지 결고 약한 태풍이 아니였다. 게다가 본선을 포함한 수백척의 선박들이 매미가 한국을 정통으로 강타할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있었지만 11일 추석밤 내가본 태풍관련 보도는 추석방송의 화면아래 지나가는 태풍주의자막뿐 (적어도 내가아는)사람들의 태풍에 대한 태도는 무관심이였다. 결국 결과는 또 이렿지머... 그건그렇고.
진해만 흑암등대 북서쪽 0.5마일 해상에 투묘를 한 본선은 태풍의 움직임을 계속 관찰하면서 다가오는 재앙에 (나름대로)대비를 하였다. 드디어 12일 당일. 저녁 6시반경부터 기압이 강하하기 시작했고 잠잠하던 바람도 당직 종료시간인 저녁8시경에는 50노트를 오가기 시작했다. 이미 CAPTAIN은 6시경 부터 승교하여 내심 불안한 기색이였고 그의 걱정에 응답이라도 하듯 기압은 급강하 결국 8시경에는 바람의 순간 최대풍속이 풍력의 최대 등급인 12를 넘어서기 시작하였다. 양현 6SHACKLE씩 놓아진 ANCHOR는 이미 슬금슬금 끌리기 시작하였고 본선의 약 2MAIL 서쪽에 투묘중이던 'OCEAN EXPRESS'란 외국적선박은 전복되어 구조신호인 'MAYDAY MAYDAY'를 반복하고 있었다. 또한 본선 0.5마일 동쪽에 위치한 흑암등대에는 확인할수없는 미상의 선박이 이미 좌초된지 오래였다.
14,16 양CHANNEL은 아비규환인 가운대 들리는 소리라고는 'Your anchor is draging'과 'Full ahead please'란 절규 뿐이였고 본선은 엔진을 사용해 주묘를 겨우 막아내고 있었다. 앵카가 유실된 선박일까? 동시에 두척의 선박이 본선을 가운대로 두고 약 100m간격으로 풍하측으로 밀려가기도 하고 이미 태풍은 삼천포로 상륙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람은 잦아들줄 모르고 밤 10시경 비상시에는 다시 선수에 나갈지모르니 일단 쉬고 있으라는 선장의 말을 따라 나는 침실로 내려왔고 텔레비젼에서는 태풍에의한 피해상황만 가득하고 줄어들줄 모르는 바람소리에 불안해 잠 이루지 못하고 11시반쯤 바람이 조금씩 잦아들고 있다는 2항사의 말을 듣고 겨우 눈을 붙인게 아마도 12시나 되지 않은가 싶다. 13일 새벽 3시40분 2항사의 당직호출에의해 올라간 선교는 이제 바람이 30노트내외로 거의 줄어있는 상황이였고 선장님은 이미 내려가신지 오래고 주묘는 되지 않고 있으나 아직 엔진은 S/B상태로 되어있고 언제라도 사용할수 있다는 2항사의 인수를 받고 정상적인 투묘당직을 시작했다. 6시경 날은 조금 씩 밝아왔고 본선주의에는 흑암등대에 좌초된 동남아해운의 싱가폴 글로리를 포함해 두 척의 선박에 주의에 좌초되어 있었고 VHF로 들을수 있었던 해양대 실습선 한나라호와 한바다호의 대화로 한바다로도 표류하던 배에 두번이나 충돌에 선수와 엔진부근에 작지않은 손상을 입었음을 알수있었다. 진해만을 통제하고 있는 항무마산은 정전으로 인해 그 업무가 마비되어 항만통제불가는 물론 출입항 양묘보고 까지 휴대용 트랜시버나 사무실 전화로 겨우 업무를 보고 있었다.
긴 밤의 아침이 지나고 오전10시 부산항 22번석에 접안하라는 회사측의 지시를 받고 본선은 지난 밤 나를 포함한 15명의 생명을 지켜준 양현의 앵카를 (다행히 심하게 꼬이지는 않았다)양묘하여 부산항으로 향했다.
역시 뉴스에 보도된 것 처럼 대형 GANTRY CLANE 11기가 완전히 종잇장처럼 구겨져있었고 부산항내는 침몰선의 유류오염방지를 휘해 분주했었다.
다행히 같이 진해만에 투묘중이던 6척의 자사선들은 간밤 모두 무사 했었고...
결국 본선은 무사히 부산항 22번석에 첫 줄을 보냈다.
물론 5대양의 거친파도와 싸워왔던 선후배 동기들에 비하면 한없이 쪽팔린 일이지만 승선생활 4년간 태풍을 직접적으로 통과한건 이번이 처음 이였고 그런 혼란 가운데 본선이 있었던 것도 처음이였다.
그래서 아직 나는 살아 있다! 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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