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일본의 전쟁이 전쟁 몇년 전부터 임박했음을 알았을 것이고, 전쟁 중에도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 시기에 고종은 전쟁준비를 해 놓을 수 있었지만, 보여주기 식으로 군수물자를 구입해서 총들이 1회용이었다고 합니다.
무기에 대해 많이 아는 전문가들이 구입하지 않고, 보여주기 식 행정으로 구입한 원인이죠.
러일 전쟁이 끝날 때까지도 조선은 일본에 대항할 힘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얼마간이라도 일본에 대항할 힘이 있어야 전쟁을 할 수 있는데, 당시 몇몇 대신들은 그정도 힘이 없다고 판단한 듯 합니다.
전국민이 너무나 큰 희생을 치룰 것이 뻔했죠.
할건다했음
헤이그특사도 보내고
가쓰라 테프트 밀약을 보면 앞에서 미국이 끌어주고 뒤에서 일본이 쳐들어오고
막을수없었음 국력이 너무 약했음
최근 대한민국이 20년동안 전쟁준비를 철저히 한 덕에 세계국방력 5위에 올라온것을 보면
작정하고 전쟁준비하면 대책이없음
친일척결이 우선시 되어야했는데 이승만이 미국에서 꼽아준 낙하산이라 자기 사람들이 너무없어서
친일세력들과 손을잡고 대한민국 정부를 이끌고 전쟁을 하던터라 친일척결이 안되었음 그덕에 다까끼마사오가
살아나서 대통령해먹고 지가 친일이라서 친일척결을 안하는 바람에 친일새끼들이 아직도 살아서 떵떵거리고 있음
개후레자식들
국산총을 만들려고 시도했지만, 그만큼의 기술력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총을 만들려면 사회모든 시스템을 바꿔야 가능했는데, 대한제국은 유럽의 절대왕정제를 모방해서, 왕이 모든 것을 통제하는 사회였습니다.
경제는 황제가 통제했고, 세금을 뜯어서 거의 대부분은 황실금고로 들어가는 체제였습니다.
생계형 친일이죠.
따라서 동학전쟁은 부정부패한 지배층에 대한 민중의 봉기였으나, 한반도에 진주한 일본군에 의해 처참히 도륙당한다.
그런 간접 식민지 통치를 말하고, 1904년 부터 1910 정도까지의 통치형태를 말하죠.
민중들과 일진회는 다들 그 말에 속아서 다들 일본을 응원했고, 적극적으로 일본에 협조했었습니다.
단지 조선왕조가 무너지기를 바래서 그런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완전 병합을 하면 조선이 일본에 진 어마어마한 빚은 다 사라지고 갚을 이유도 없어집니다.
정조때부터라도 수원성 축조에 이어서 계속 기반을 다지고 준비했으면 어땠을까 싶네요.
이완용은 하수인일 뿐입니다.
고종의 형은 이완용의 5배의 돈을 일본으로 부터 받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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