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중반경 울산지검 특수부 수사관으로 근무할 때
검사인사이동으로 우리방 검사가 타지역으로 발령 났다.
당시에는 인사이동으로 다른 곳으로 가는 검사에게
관행적으로 변호사, 지역유지, 기업체 등이 '전별금'이라는 명목으로 검사에게 봉투를 보낸다.
나의 상관인 검사는
기업체에는 악명높을 정도로 혹독하게 굴다가 어느 시점이면
슬며시 접기로 유명한 검사였는데 (이 문제로 본인과 여러번 다투기도 했음)
이 자가 다른 곳으로 전출가게되자
울산지역 웬만한 기업체는 거의 전별금 봉투를 들고 왔었다.
옆에서 지켜볼 때
봉투들고 찾아온 사람이 어림짐작으로 200명은 넘을 정도였다.
검사가 자리를 비웠을 때 사무실을 방문하여 전별금 봉투를 책상위에 두고간 것을 보고는
그 금액이 궁금하여 봉투 대여섯개를 들어다 보았다.
보통은 100만원이었고, 10만원권 자기앞수표가 상당히 들어있는 봉투도 있었다.
그래서 줄잡아 보았을 때 해당 검사가 받은 전별금은
적어도 1억원에서 많게는 2억원에 이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물론 일반 직원들도 인사이동이 있으면 전별금을 서로 주고받는데
당시 검찰청 직원들이 주고 받는 전별금 수준은 10만원 수준이었다.
본인도 그 수준으로 누군가 전근가면 주고 내가 전근갈 때는 받았다.
그런데 직원들을 제외한 외부 인사가 검사에게 전별금을 주는 경우에는
최저 100만원이라는 것을 그때 확인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전별금을 주고받는지 알지 못하나
90년대에는 검사가 인사이동을 몇번 거치면 집산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
두번째 에피소드
1980년대에 초임으로 발령받은 모 지청에 첫출근하여 전입신고를 하려는데
지청장 실에 분주하게 사람들이 왔다 갔다하고 있었다.
신고 끝나고 들은 바로는
지청장이 주말에 차를 운전하여 서울 집으로 가던 중 자동차 사고가 났는데
차만 부서지고 다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며칠 지나 관용차운전자가 지청장이 새로 차를 구입하는데 따라가 봐주었다고 하더라
그 내용을 잘 아는 직원에 의하면
지청장이 운전하다가 자동차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들은 주변인들이 위로금을 들고 왔고,
그 돈으로 새차를 사고도 돈이 남았을 것이라고 하였다.
물론 지청장은 관용차량으로 출퇴근하였기에 새로산 차량에 대하여는 설왕설래만 있었지 어떤차인지는 들은 기억이 없다.
검찰공화국
검사들에게는 윤석열이 희망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수사권을 많이 빼앗겼는데~~~
수사권의 빼앗김은 누릴 수 있는 권한의 축소라 아프기 때문이다.
즉, 늘 대접받아야 함에 익숙하였는데, 평범한 같은 국민으로 취급받기는 싫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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